강대국 외교는 계속된다 | 스탈린의 망령과 푸틴의 책략

1950년 스탈린이 6·25전쟁으로 미군을 분산시킨 전략이 2024년 푸틴에게 재현되고 있다. 북러 군사동맹 조약의 숨겨진 의도와 중국 견제 전략을 해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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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 03, 2025
강대국 외교는 계속된다 | 스탈린의 망령과 푸틴의 책략

이 글은 KBS 심층K 스탈린의 망령과 푸틴의 책략…냉혹한 국제정세와 흔들리는 한반도 안보지형 기사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푸틴의 '새판 짜기'...스탈린과 닮은 꼴?

1950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인 스탈린의 머리는 무척 복잡했다. 베를린 봉쇄를 감행해 유럽에서 '철의 장막'을 치고 있다는 비난을 받으면서 불과 5년 전만 해도 '동지'였던 미국과 프랑스, 영국 등 서방세계와의 갈등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봉쇄된 서베를린에 수송기를 동원해 물자를 공수하면서 더 이상 스탈린이 서유럽으로 세력을 넓히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고 성과도 거뒀다.

소련도 서베를린 외곽을 완전히 봉쇄해 고사시킨 뒤 공산진영에 편입시키려 했다. 그러나 미국을 위시한 서방세계의 대규모 공수작전을 실패했다.

1분에 한 대씩 내려앉은 서베를린 수송기들

1948년 6월부터 시작된 미군의 베를린 공수작전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당시, 서베를린 템페르호프 공항에는 1분에 한 대 꼴로 수송기가 내려앉았다. 결국 이런 사상 초유의 보급작전으로 서베를린을 지켜낼 수 있었다.

1949년에는 미국의 기치 아래 유럽을 군사적으로 한데 묶어 북대서양조약기구 NATO가 창설됐다. '냉전(Cold War)'이 본격화된 것이다.

당시 소련으로선 서방세계의 강력한 의지와 실력행사에 힘이 부칠 수밖에 없었다. 발칸반도의 실력자가 된 유고연방의 티토도 소련의 도움 없이 정권을 장악한 터라 영 말을 듣지 않았다. 그래서 소련이 티토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 유고연방 내 민족 간 갈등을 부추겨 분쟁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분석까지 나오던 터였다.

스탈린으로선 제국의 완성과 확대는 물론 사회주의 종주국 위상을 굳히기 위해 유럽에서 총력을 다해야 했다. 지금의 러시아나 2차대전 이후의 소련 역시 아시아보다는 유럽에서의 위상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힘을 분산시켜라'는 미션

2024년의 6월 상황에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행보를 보면, 과거 스탈린의 행적을 떠올리게 된다. 단기전으로 끝날 줄 알았던 우크라이나 전쟁은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았다. 전세가 러시아 쪽으로 기울고 있다고는 하지만, 미 의회의 우크라이나 지원안이 통과됐고 서방 세계도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있었다.

제아무리 러시아의 인구가 우크라이나에 비해 압도적이고 자원이 많다고 해도 장기간에 걸친 전쟁으로 힘이 부치는 건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푸틴이 NATO를 이끌며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있는 미국의 관심과 역량을 지구 반대편 동북아시아로 분산시키기 위한 전략적 행보에 나서지 않을까라는 전망이 있었던 것인데, 이 불길한 전망은 결국 현실이 됐다.

스탈린의 신중한 성격과 6·25 전쟁 승인

스탈린은 김일성으로부터 남침계획 승인 요청을 무려 40여 차례나 받았다는 연구결과도 있을 만큼, 그는 자신의 결정이 불러올 결과들을 면밀히 검토하고 또 검토할 만큼 신중한 성격이었다.

이론이 있기는 하지만 6·25전쟁과 관련한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들을 살펴보면, 당시 스탈린이 북한의 남침을 승인한 것은 유럽에 집중되던 미국의 군사적 역량을 한반도로 분산시키기 위한 전략적 결정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3년이 넘는 6·25전쟁 기간 이 땅에 파견된 미군이 연인원으로 계산할 때 170만 명 정도의 엄청난 병력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미군의 힘을 분산시킨다는 스탈린의 '계략'은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푸틴, "소련군이 6.25전쟁 때 북한 위해 싸웠다"... 발언 의도는?

그럼에도 냉전 시대 소련과 냉전 붕괴 이후의 러시아에서는 그동안 6.25 전쟁에 대해 자신들이 '직접 군사를 보내 참전하지는 않았다', '지원 역할에 머물렀다'는 식으로 얘기해 왔다. 적어도 국제사회 앞에서는 그랬다. 그런데 지난 20일 방북 당시, 푸틴은 공개적으로 "소련군이 1950년에서 53까지 북한을 위해 싸웠다"고 말했다.

2024년 6월 19일 북한을 방문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평양 해방탑을 찾아 북한에서 사망한 소련군을 추모하는 상징물 앞에 헌화했다. 이와 동시에 러시아 관영 타스 통신은 1945년 북한지역에서 일본군과 전투 중 4만 7천 명의 소련군 사상자가 나왔다고 보도했다. 한 마디로 소련 시절부터 북한에서 피를 흘렸으니, 북한과 러시아는 형제라는 얘기였다.

그리고는 북한과 '포괄적 전략 동반자 조약'을 맺었다. 지난 1996년 폐기했던 '군사동맹 조약'에 준하는 성격의 조약을 말이다.

북한이 공개한 조약 전문에 따르면 제4조에 '어느 한쪽이 무력침공을 받아 전쟁상태에 처하면 지체없이 군사적 원조를 제공하기로 합의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사실상 '자동 군사개입'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조항으로 북러 군사동맹 관계가 28년 만에 완전히 회복된 것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북·러 간 새 조약은 한·미 동맹에 버금가는 수준

국제관계에선 이런 조약상의 '문구'가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사문화되는 조약들도 있다. 북한과 새로운 동맹조약을 체결한 뒤 푸틴도 한국을 의식했던지 "내가 아는 한 대한민국은 북한을 침략할 의도가 없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 말을 듣고 대한민국 국민들은 안심해야 할까?

흥분할 필요는 없지만 '조용히 있으라'는 '경고'라는 것을 외교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이 서해5도나 휴전선 인근에서 도발을 감행해 남북간에 무력충돌이 확산되고 북한이 '침략받았다'고 포장하고 선전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자동군사개입' 조항의 위험성

그래서 아무리 '침략을 받으면'이라는 전제를 달아놨다 할지라도 사실상 '자동군사개입' 조항이 포함된 것으로 보지 않는다면 순진하거나 바보일 뿐이다. 북한과 러시아간 새로운 조약은 한미 동맹에 버금가는 수준이란 평가가 지나치지 않은 이유다.

이렇게 되면 사소한 도발이라도 대한민국으로서는 대응하면서 한편으론 생각해야 할 경우의 수가 크게 늘어난다. 고민도 깊어진다. 확전을 막기 위해 어느 수준까지 대응해야 한단 말인가?

외교안보 분야에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한 뼘이라도 협소해지면 불리한 것이고, 그 정도가 크다면 국가가 총력 대응에 나서야 하는 상황을 불러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도 달갑지 않았던 북러 조약 부활

러시아로서도 지난 1961년의 북러 조약으로의 회귀가 그리 반갑지만은 않았을 터이다. 구 소련체제가 무너진 뒤 1991년 대한민국과 수교했고 1994년에는 북한과 1961년 조약을 파기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러시아의 입장에서 여전히 사회주의 체제인 북한과의 동맹조약이 그리 마뜩치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로선 당장 눈앞의 상황이 더 급했다. 자신들이 시작한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고전을 면치 못할 때 북한이 그야말로 발 벗고 도왔기 때문이다.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은 김정은이 들이민 청구서였다.

대한민국으로선 냉전체제와 구 소련 붕괴 이후의 대러시아 외교가 혹독한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한반도 안보 상황 관리에 있어서도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게 됐다. 푸틴이 러시아로 돌아간 뒤 한미일 외교장관들이 회동을 통해 상황의 심각성을 공유하고 대응책을 논의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북한과 러시아간에 맺은 조약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새로운 상황'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해야 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왜 북·러 간 밀착을 경계할까

그런데 대한민국과 입장은 다르지만 상황을 심각하게 보는 건 중국도 마찬가지였다.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적 밀착으로 한반도와 인도 태평양 지역에서 미군과 동맹국들의 군사력이 더 투사된다면 중국으로선 결코 반가울 리 없기 때문이다.

푸틴은 한발 더 나아가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갈등을 빚고 있는 베트남도 방문했다. 지금도 베트남과 중국의 관계는 해역분쟁에서도 갈등 관계지만 소비재와 경공업 분야에선 그야말로 치열한 경쟁자 관계로 바뀌어 가고 있다. 그런데 푸틴이 베트남을 방문해 친선과 우호를 강조하고 나서니 중국으로선 불편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다.

베트남의 '대나무 외교'가 다시 주목받는 이유

역사적으로도 '자존과 실익'을 동시에 추구해온 베트남은 또 주목할 만한 모습을 보였다. 뿌리는 단단히 땅에 박은 채 유연하게 외교를 하는 이른바 '대나무 외교'가 다시 두각을 나타냈다.

중국을 대체할 '세계의 공장'을 꿈꾸는 베트남은 푸틴을 정중하게 환대하면서도 미국과 서방세계의 눈 밖에 나는 협약을 맺지 않았다. 베트남도 중국을 견제할 동조세력으로 러시아를 환영하되 그 환대가 지나쳐 국익을 훼손하는 우를 범하지 않으려 섬세하게 노력한 것이다.

미국의 고위 외교당국자는 푸틴의 베트남 방문이 끝난 직후 하노이로 날아가 양국의 우호관계가 굳건하다고 밝혔다. 이념보다는 실질적인 국익을 최우선으로 삼고 강대국을 상대해온 베트남의 외교를 유심히 살펴볼 이유다.

한편 24년 만의 푸틴이 북한을 방문함으로써 강력한 북·러 공조가 이뤄지는 것과 동시에 한국과 중국은 차관급 안보전략 대화를 했다. 그간 두 나라 사이 안보 전략대화의 격이 이보다 낮았던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높아진 것이다. 이 또한 불편했던 한중 관계를 돌이켜보면 예사롭지 않은 모습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푸틴 대통령은 2024년 4연임에 성공한 뒤 첫 외국 방문지로 중국을 선택했다. 많은 이들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을 발 벗고 도운 북한을 먼저 가지 않겠냐고 봤지만, 첫 방문지는 중국이었다. 하지만 러시아 입장에서 볼 때 성과는 좋지 못했다. 러시아로선 중국의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와 시베리아 가스관 연결 계획 확정 등을 원했던 것 같지만, 시진핑 주석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중국의 입장에서 본다면 미국과 유럽연합이 중국 전기차 등 주요 수출품목에 엄청난 관세폭탄으로 압박하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를 발 벗고 도와주겠다고 하는 것은 중국의 입지를 더욱 좁힐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을 법하다.

중국과 러시아간 해묵은 갈등과 조짐

여기에 더해 전문가들은 러시아와 중국 간 해묵은 '주도권' 싸움도 북러 밀착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스탈린의 소련도 유럽은 물론 전 세계 사회주의 국가들에겐 넘볼 수 없는 종주국이어야 했다. 그런 스탈린에게 중국 대륙의 새로운 주인이 된 마오쩌둥은 실력은 있지만 '자신의 위상을 넘지 못할 존재'로 비춰졌을 법했다. 아니 '반드시 아래 있어야 할 존재'가 되어야 했다.

마오쩌둥이 스탈린을 만나기 위해 소련을 방문했다가 모스크바 외곽에서 두 달간 '대기'해야 했다는 일화가 전해지는 것을 보면 그렇다.

달라진 중러 관계와 푸틴의 헤이룽장성 방문

그러나 지금의 중국은 냉전 시대의 중국이 아니다.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러시아도 더 이상 사회주의국가가 아니다. 중국을 한참 아래로 내려다봤던 스탈린. 그라면 중국을 방문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갔더라도 더더구나 동북지방의 헤이룽장성까지는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푸틴은 거기까지 갔다.

사회주의 국가이거나 과거 사회주의를 경험한 나라들이 어느 나라를 방문해 그렇게 장거리 여정에 나서는 것은 여러 가지 함의를 갖고 있다. 외교적 행보라도 강대국간 외교에선 '굴종'으로 비춰지는 것들이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급박해진 푸틴은 중국을 상대로 여유가 별로 없었다. 시진핑은 푸틴과 걸으면서 마오쩌둥의 스탈린 면담 당시의 굴욕을 떠올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은 달라진 두 나라간의 관계를 생각하면서 말이다.

'스트롱맨' 푸틴의 대전략

그러나 '스트롱맨' 푸틴은 포기하지 않고 소련시대의 영광을 계속 꿈꾸고 있었다. 그가 북한을 방문해 선보인 것은 '대전략'이다. 거대한 체스판의 돌을 놓기 위함이다. 물론 중국에 대한 불편함도 담고 있었다. 북한 입장에서도 '탈중국'으로 나아가는 전략적 이해관계와 일치했다고 생각했을 법하다.

우리가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한반도 안보 상황을 정확히 진단하고 올바른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선 동북아시아를 넘어 반드시 확대경을 전 세계로 넓혀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세계지도와 거대한 체스판을 놓고 치열하게 전략을 구상하며 수 싸움을 하는 강대국들의 외교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반도는 언제든 지각변동에 휘말릴 수 있다

거대한 힘의 각축장이었던 한반도는 언제든 다시 지각변동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 있다. 대한민국의 힘이 강해졌다고 해도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외교적 사건들이 일어날 때마다 의미없는 '정신승리'로 귀결될지 모를 흥분을 가라앉힐 필요가 있다. 어떤 사안이라도 모든 이해 당사국들의 다층적 시각에서 냉정하고 차분하게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푸틴 방북과 조약을 보는 서로 다른 관점

결과적으로 푸틴의 방북과 함께 전격적으로 발표된 '조약'은 대한민국은 물론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국내 언론은 흔들리는 한반도의 안보 지형에 초점을 맞췄고, 미국과 서방의 언론들은 푸틴의 방북과 '군사동맹에 준하는 조약' 체결로 한때 푸틴이 흉내라도 냈던 북핵 포기시도는 그야말로 물 건너갔고 비확산 체제가 사실상 붕괴했다고 분석했다. 동일한 사안을 보는 입장과 시각이 다른 것이다.

한반도에 과거와 같은 '냉전의 잔영'이 결코 다시 드리워져선 안 되겠지만,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냉혹한 국제정치 현실이 전개될 가능성에 충실히 대비해 나가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에게 '전략적 활로'와 '기회의 창'이 열릴 때를 기다리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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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스트 금철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