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금철영 기자가 작성한 KBS 기사 [울지마 키이우]② 국제정치의 냉엄한 현실…‘안전보장’과 ‘영토 회복’의 딜레마 [취재후]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30년간 무력했던 그 약속
개인적으로는 이번이 3번째 우크라이나 취재였다.
첫번째 우크라이나 방문 취재는 지난 2007년이었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기존의 여러 핵 폐기 방식이 다시 검토되던 때였다. 우크라이나는 '자발적인 핵 폐기 모범국가'였다. 당시만 해도 '우크라이나식 핵 폐기' 방식에서 조금이나마 '북핵 폐기의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국내외적으로 연구가 활발하던 시기였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우크라이나는 구 소련 붕괴 뒤 국내에 있던 천8백여 기의 핵탄두를 러시아와 서방세계로 이전했다. 세계 3위의 핵무기 보유국에서 비핵국가가 된 것이다. 처음엔 안보를 이유로 핵보유국으로 남겠다고 했다가 비핵화로 입장을 바꿨다. 국제사회 압력도 컸지만 경제적 지원 카드와 함께 강대국들의 안전보장 약속을 믿었던 것이다. 미국과 영국은 물론 러시아도 한결같이 우크라이나가 자국 내 핵무기를 이전하면 '영토 보장'과 '안전보장'을 하겠다고 굳게 약속했다. 이렇게 해서 1994년 '부다페스트 각서'가 체결됐다.
휴지조각이 된 부다페스트 각서의 교훈
부다페스트 각서는 왜 실패했을까?
그러나 지난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인 크림반도를 전격적으로 합병하면서 '부다페스트 각서'는 순식간에 휴지 조각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러시아는 2022년 2월 전면 침공에 나섰다. 수많은 '안보 전문가'들은 그때까지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전면전을 벌이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5일은 '부다페스트 각서' 체결 3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영상 메시지를 통해 "이 문서가 제 구실을 한 적은 단 하루도 없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실효성 있는 안전보장'과 '진정한 동맹이 현실적인 안보 토대'라고 말했다.
드론 전쟁으로 변한 최전선의 현실
드론의 등장과 삼엄해진 분위기
지난 2007년 방문 시에는 우크라이나 페르보마이스크에 있는 핵미사일 기지를 취재하고, 핵 과학자들을 모아놓은 STCU를 취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내심 이 시설들을 둘러볼 수 있을까 취재 여부를 타진했다. 하지만 불가능했다. 전쟁 중 민감한 군 시설이나 보안 기관 취재를 외국 언론사에 허용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우리는 우크라이나 체류 기간 벨라루스와 맞대고 있는 북부 전선 최전방 16킬로미터 지점까지 접근했지만, 우크라이나군은 벙커 등 군사시설과 중무장한 군인들, 심지어 철조망까지도 일절 촬영하지 못하게 했다. 러시아 드론 공격 시 손쉬운 표적이 될 수 있다는 게 촬영 불허의 이유였다.
북한군 파병이 바꾼 전쟁의 양상
북한군 파병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어떻게 바꿨을까?
우크라이나 군 당국은 특수작전부대(CCO)를 포함해 전방에서 드론 공격을 주도하는 부대들이 북한군을 공격하는 장면이라며 12월들어 유난히 많은 동영상을 배포했다. 대부분 드론 공격을 받는 병사들이 눈 덮인 평원에서 숨을 곳을 찾거나 우왕좌왕하다 쓰러지는 모습들이었다. 북한군의 투입으로 전세가 러시아에 유리하게 전개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로 읽혔다.
취재진은 우크라이나 군 관계자에게 북한군 사상자가 그렇게 많이 발생한다고 밝히고 있는데 "왜 북한군 포로는 발생하지 않고 있는가?" 물었다. 중령 계급의 한 우크라이나 정보장교는 이 질문에 "북한군이 항복을 거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반도 안보 환경의 근본적 변화
우크라이나 전쟁이 한반도 안보에 미치는 영향은?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대한민국의 안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남북한 모두 깊숙이 개입돼 있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이 전쟁의 나비효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주시해야 하는 이유다. 그것이 '남의 나라 전쟁'으로 치부할 수 없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러시아는 2024년 6월 북한과 군사동맹에 준하는 조약을 체결했다. 이른바 군사적 차원의 '자동 개입 조항'도 포함됐다. '설마 그 조항이 작동할 일이 있겠냐'며 애써 평가 절하하려 해도 외교·안보를 다루는 사람들은 이게 얼마나 의미심장한 것인지 잘 안다. 대한민국으로서는 북핵 위협에 더해 또 다른 안보 시험대에 오르게 된 것이다.
핵 위협의 확산과 국제질서의 붕괴
우크라이나 전쟁은 핵 질서를 어떻게 바꿨을까?
하지만 그 기간 '핵 국가는 비핵국가를 핵으로 위협하지 않는다'는 국제 비확산 조약 NPT의 대전제도 무너졌다. 전쟁 기간 러시아는 여러 차례 핵무기 사용을 경고하며 위협했다. 핵 관련 교리와 법령도 바꿨다. 안보 위협을 빌미로 비핵국가를 공격할 수 있는 명분과 법리를 만든 것이다.
러시아보다 한발 앞서 핵 관련 교리와 법령을 바꾼 나라는 북한이다. 손자병법에는 적대적 상대방을 다루거나 전쟁에 대처하는 4가지 방안 가운데 2가지 '상책'을 이렇게 언급한다. 첫째는 '벌모(伐謀)'. 즉 상대가 전쟁이나 도발을 모의하고 기도하는 단계에서 그 계획과 의지를 좌절시키는 것. 둘째는 '벌교(伐交)'. 쉽게 말하면 상대방이 '군사 동맹'을 만들지 못하게 외교로 대처하는 것이다.
쿠르스크 전투와 북한군의 역할
북한군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현재 우크라이나에 투입된 '북한군 관련 영상'들이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쿠르스크에서 집중적으로 나오고 있다는 점으로 미뤄볼때, 러시아가 쿠르스크를 완전히 탈환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고 바로 이곳에 북한 병력이 집중 투입됐음을 추론해 볼 수 있다.
쿠르스크는 2차대전 당시 러시아와 독일이 수천 대의 전차를 동원해 격돌했던 곳이다. 당시 러시아군은 파죽지세의 독일군 전차들을 막아내느라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결국 승리했다. 독일군 전차 1대를 파괴하기 위해 러시아군 전차 3대가 달려들어 희생끝에 간신히 '승리의 땅'이 됐는데 지금 또다시 격전지가 됐고 여기에 북한 병력 상당수가 투입된 것으로 보인다.
시간과의 싸움, 불리해지는 협상 조건
우크라이나 전쟁의 전망은 어떨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긴 전쟁으로 힘에 부치는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압도적인 국력의 차이를 고려할 때 우크라이나가 더 힘겨워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가 종전을 압박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지원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그 예측은 어렵지 않다.
우크라이나가 향후 더 불리한 조건에서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지금도 우크라이나는 최전선의 마을들을 하나씩 잃고 있다. 불행히도 시간은 우크라이나의 편이 아니다.
한반도에 주는 전략적 교훈
우크라이나 전쟁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안전보장 약속만으로는 국가의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국제정세는 언제든 예상과 다르게 전개될 수 있다는 것이다. 북러 군사동맹의 복원과 북한군의 실전 경험 축적, 핵 위협의 일상화는 모두 한반도 안보 환경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30년간 지켜지지 않은 부다페스트 각서의 교훈과 현재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전쟁의 실상은 앞으로 펼쳐질 미래 전쟁의 모습을 예견하고 있다. 나를 포함한 취재팀이 현장에서 취득한 기록물은 KBS 시사기획 <창>의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었다. 다큐멘터리 ‘우크라이나 임팩트 <제1편> 미래 전쟁의 서막'은 7월 29일(화) 밤 10시 KBS 1TV 시사기획 창에서 방송되며, 방송 후 영상을 KBS 유튜브에서 확인할 수 있다.